복권에 당첨되셨습니다
오늘 아침 과학기술인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스려야 했다. 당첨금으로 섬 지역 과학 대중강연을 펼치는 뉴스를 보고 매달 소액 기부의 마음으로 복권을 샀지만, 내가 당첨될지는 예상 못했다. 고향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 종종 등장하는 안줏거리로 '내가 복권에 당첨되면 말이야'인 복권 버킷리스트가, 과학기술인 복권을 사고부터는 ‘당첨금으로 무슨 활동을 하면 좋을까?’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막상 당첨되니 뭘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정신을 차리고 1억 원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과학기술 활동 목록을 정리하고, 나만의 주관적인 평가 지표를 만들어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인터넷 기반 과학기술인 글쓰기 플랫폼 구축 및 운영'이 최종 선정되었다. 과학기술인이 참여해 각자의 지식과 생각 그리고 소소한 삶을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5장 이내 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당첨금을 받았다. 나와 함께 당첨된 나머지 4명은 어떤 활동을 제안했을까 궁금했다. 얼마 후 복권 사이트를 통해 당첨자들의 활동 계획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재미있고 흥미로운 제안들이었다.
세상에 이런 복권은 없다
과학기술인 복권이 생긴 지 올해로 3년째이다. 매달 5명을 추첨해 1억 원의 금액이 지급된다. 요즘 세상에 1등 당첨금치고는 너무 소박한 금액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복권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다. 당첨금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활동에만 지출할 수 있으며, 2년 내 사용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하기 곤란하다면,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나 기관에 기부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그리고 활동에 대해 평가는 하지 않는다. 당첨금 1억 원이란 금액 설정도 흥미롭다. 당첨 금액이 많으면 없던 욕심도 생길 수 있어, 일반적인 일확천금 복권과는 달리 심리적으로 사심을 극복할 수 있는 금액으로 설정하였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과학 대중화로 진행되는 지원사업보다는 몇 배 높은 금액이다. 과학 대중화 지원사업은 유독 지원 실적 수 가 중요한 탓인지, 현실적이지 못한 지원금으로 참여자들은 열정 페이로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정부 지원 사업비보다는 높게 당첨금을 설정하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복권 당첨금 사용 조건이 이상하다거나 복권의 목적이 막연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꽤 인기가 높다. 주된 이유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복권 당첨금을 사용한 활동 중 흥미롭고 유익한 사례들이 많이 나오면서, 복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높아졌다. 판소리를 취미로 배우고 있던 중견 과학자는 당첨금으로 ‘과학과 판소리의 만남’이란 흥겨운 공연을 기획해 시민들에게 큰 갈채를 받았다. 수도권 과학 교사는 당첨금으로 섬 지역 학생들을 위해 ‘섬 따라 과학강연’을 기획해 도서 지역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다. 익명의 당첨자는 1억 원을 ‘청년과학자들의 제주도 돌고래 연구’에 모두 기부했다. 1년이 지난 후 돌고래 연구는 좋은 성과를 얻어 네이처지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세상에 볼 수 없었던 이상한 복권이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돈 쓰기로 과학기술인을 정의하다
당연히 눈치챘겠지만, 앞의 복권 이야기는 현실이 아닌 상상이다. 과학은 상상의 꿈을 먹고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과학기술인 복권도 상상의 꿈을 먹고 현실화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복권을 상상하면서 평소 가졌던 의문이 하나 해결되었다. 내가 가입한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과학기술자'가 아닌 '과학기술인' 시민단체이다. '자'와 '인' 한 글자만 다르지만 의미 차이는 크다. 단체설립 시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도 두 대상의 차이가 과연 뭘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과학기술자는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연구개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칭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인은 좀 애매하다. ESC 홈페이지에는 과학기술인을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 과학기술학자, 과학기술정책 연구자는 물론 과학 교사, 과학커뮤니케이터, 기업인, 작가, 언론인, 방송인 등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안내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연관 있거나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모두 해당된다지만,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복권 상상을 통해서 '과학기술인'의 좀 더 명쾌한 정의를 내려볼 수 있었다. 과학기술인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평소 꿈꿔왔던 활동을 말할 수 있으면 당신은 과학기술인이다. 만약 아직 생각하지 못했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당첨금을 사용해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과학기술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모진 세상이다. 이왕이면 돈을 가치 있게 쓰는 것으로 구분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인에게 돈은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과학기술인 복권 당첨이란 상상을 통해 뭔가 색다른 돈 쓰기의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복권에 당첨되셨습니다
오늘 아침 과학기술인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스려야 했다. 당첨금으로 섬 지역 과학 대중강연을 펼치는 뉴스를 보고 매달 소액 기부의 마음으로 복권을 샀지만, 내가 당첨될지는 예상 못했다. 고향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 종종 등장하는 안줏거리로 '내가 복권에 당첨되면 말이야'인 복권 버킷리스트가, 과학기술인 복권을 사고부터는 ‘당첨금으로 무슨 활동을 하면 좋을까?’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막상 당첨되니 뭘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정신을 차리고 1억 원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과학기술 활동 목록을 정리하고, 나만의 주관적인 평가 지표를 만들어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인터넷 기반 과학기술인 글쓰기 플랫폼 구축 및 운영'이 최종 선정되었다. 과학기술인이 참여해 각자의 지식과 생각 그리고 소소한 삶을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5장 이내 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당첨금을 받았다. 나와 함께 당첨된 나머지 4명은 어떤 활동을 제안했을까 궁금했다. 얼마 후 복권 사이트를 통해 당첨자들의 활동 계획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재미있고 흥미로운 제안들이었다.
세상에 이런 복권은 없다
과학기술인 복권이 생긴 지 올해로 3년째이다. 매달 5명을 추첨해 1억 원의 금액이 지급된다. 요즘 세상에 1등 당첨금치고는 너무 소박한 금액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복권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다. 당첨금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활동에만 지출할 수 있으며, 2년 내 사용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하기 곤란하다면,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나 기관에 기부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그리고 활동에 대해 평가는 하지 않는다. 당첨금 1억 원이란 금액 설정도 흥미롭다. 당첨 금액이 많으면 없던 욕심도 생길 수 있어, 일반적인 일확천금 복권과는 달리 심리적으로 사심을 극복할 수 있는 금액으로 설정하였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과학 대중화로 진행되는 지원사업보다는 몇 배 높은 금액이다. 과학 대중화 지원사업은 유독 지원 실적 수 가 중요한 탓인지, 현실적이지 못한 지원금으로 참여자들은 열정 페이로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정부 지원 사업비보다는 높게 당첨금을 설정하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복권 당첨금 사용 조건이 이상하다거나 복권의 목적이 막연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꽤 인기가 높다. 주된 이유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복권 당첨금을 사용한 활동 중 흥미롭고 유익한 사례들이 많이 나오면서, 복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높아졌다. 판소리를 취미로 배우고 있던 중견 과학자는 당첨금으로 ‘과학과 판소리의 만남’이란 흥겨운 공연을 기획해 시민들에게 큰 갈채를 받았다. 수도권 과학 교사는 당첨금으로 섬 지역 학생들을 위해 ‘섬 따라 과학강연’을 기획해 도서 지역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다. 익명의 당첨자는 1억 원을 ‘청년과학자들의 제주도 돌고래 연구’에 모두 기부했다. 1년이 지난 후 돌고래 연구는 좋은 성과를 얻어 네이처지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세상에 볼 수 없었던 이상한 복권이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돈 쓰기로 과학기술인을 정의하다
당연히 눈치챘겠지만, 앞의 복권 이야기는 현실이 아닌 상상이다. 과학은 상상의 꿈을 먹고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과학기술인 복권도 상상의 꿈을 먹고 현실화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복권을 상상하면서 평소 가졌던 의문이 하나 해결되었다. 내가 가입한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과학기술자'가 아닌 '과학기술인' 시민단체이다. '자'와 '인' 한 글자만 다르지만 의미 차이는 크다. 단체설립 시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도 두 대상의 차이가 과연 뭘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과학기술자는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연구개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칭한다. 그런데 과학기술인은 좀 애매하다. ESC 홈페이지에는 과학기술인을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 과학기술학자, 과학기술정책 연구자는 물론 과학 교사, 과학커뮤니케이터, 기업인, 작가, 언론인, 방송인 등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안내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연관 있거나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모두 해당된다지만,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복권 상상을 통해서 '과학기술인'의 좀 더 명쾌한 정의를 내려볼 수 있었다. 과학기술인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평소 꿈꿔왔던 활동을 말할 수 있으면 당신은 과학기술인이다. 만약 아직 생각하지 못했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당첨금을 사용해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과학기술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모진 세상이다. 이왕이면 돈을 가치 있게 쓰는 것으로 구분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인에게 돈은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과학기술인 복권 당첨이란 상상을 통해 뭔가 색다른 돈 쓰기의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